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반응형'투명페트병' 회수기에 넣고 현금으로 돌려받기
'투명페트병' 회수기에 넣고 현금으로 돌려받기 @신천동사무소 언제 이런 '투며페트병 회수기'가 있었지?
계속 AI 착한 기계음으로 "투입구가 닫힙니다. 손을 투입구에 넣지 말아 주세요"라는 소리가 들려돌아보고 한 컷 찍어서 유튜브 숏츠로 올렸더니 댓글이 무려 2건이나 달렸다.
평소 2천건이 넘어도 잘 안 달리는 댓글인데 웬일로 2건이나 달렸나 싶어 포스팅할 수 있는 원동력을 주었다.
동사무소에 이러한 친환경 지향하는 기계와 활동이 요새 계속 여럿 이루어지는 것 같아, 다녀올 때마다 기분이 좋아진다.투명 페트병 1병당 (뚜껑은 분리배출) 10원인데, 현금으로 지급되는 것이 아니고, 캐시비 교통카드 또는 캐시비 앱에 적립이 된다.
'투명 페트병' 회수기 앞 시흥시의 역사를 담은 사진 전시회
흑백의 옛 모습 사진과 컬러로 된 지금의 모습을 비교하여 전시해져 있었다.
우리 동네 시흥의 모습이 참 애틋하고 아름답게 사진 속에 담겨 있다.
나만 보기 참으로 아깝다는 생각에 폰 사진으로 담아 왔다.
1982년-옛소래-시가지-모습-1982년,-소래수파마켓-앞의-신작로-모습/ 1970년대-뱀내-우시장-풍경 - 1982년: 옛소래 시가지 모습 1982년, 소래수파마켓 앞의 신작로 모습. 당시 소래읍의 중심 시가지였다.
- 1970년대: 뱀내우시장에 집결된 소들의 생육 사애를 측정하는 모습
1970년대-활발했던-뱀내-우시장의-모습// 1982년-옛-신천-삼거리-일원// 1980~90년대-소래포구와-시흥을-하나로-묶어-주었던-수인선-소래철교-풍경 - 1970년: 활발했던 뱀내 우시장의 모습 - 소래권의 뱀내장은 당시 해안에서 멀지 않은 거리에 입지해 있었으며, 지역 내 중심상권으로서 1980년대 폐장될 때까지 북쪽의 부천상권과 연계하여 시흥 상업활동의 거점이 되었다.
- 1982년: 옛 신천 삼거리 일원 - 지금은 신천동과 대야동의 경계가 되는 곳이다. 불우이웃돕기 가두 캠페인 모습, 지금은 옛 뱀내장터라고 일컬어 지며 '문화의 거리'기 되었다.
- 1980~90년대: 소래포구와 시흥을 하나로 묶어 주었던 수인선 소래철교 풍경 -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소래포구와 월곶 일대는 전통적인 포구의 모습을 느낄 수 있는 관광형 포구로 자리잡게 되었다. 행정구역 상으로는 시흥과 인천으로 나뉘어 있었지만, 수인선이 폐선되기 전까지 월곶과 소래는 하나의 문화권을 형성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. 지금은 아파트가 많이 들어서 있다.
1962년-오복동에-등장한-택시/ 1960년대-물왕저수지 - 1962년: 오복동에 등장한 택시- 1962년, 지금의 시흥시 신천동에 출현한 택시, 택시 뒤편으로 보이는 초가가 이채롭다. ;진짜 영화의 한장면 같이 너무 이쁜 장면이다.^
- 1960년대: 물왕저수지; 흑백으로 찍혀서 그럴까, 왠지 더 장엄해 보이는 모습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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